그의 이름 Barack Hussein Obama (버락 오바마) 그는 케냐 출신으로 케네디 재단의 지원으로 미국에서 유학 중이었던 아버지와, 미국 캔자스 주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2살때 부모의 이혼과 그 직후 어머니의 인도네시아인과 재혼 후 하와이 인도네시아등 여러 지역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오바마는 흑인과 백인의 불공평함을 알아가면서 한때 마약에 손을 대는 등 불행한 청년 시절을 보내기도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로스엔젤레스의 옥시덴탈 대학교에 입학하여 2년동안
수학하였고, 다인종이 공존하는 도시 뉴욕 명문 대학 컬럼비아 대학교로 편입했다.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국제관계학과 정치학을 수학하였고, 졸업 후 시카고 시의 빈민가에서 인권 운동가로 맹활약하였다. 그 이후에는 탁월한 학업 성취를 발휘, 1991년에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는 사상 처음으로 하버드 대학교 법과대학의 학술지 편집장을 지냈으며 그 직후 수석 졸업하였다. 이후 오바마는 흑인과 백인의 인종 문제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민 공통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이후 시카고 시지역을 중심으로 지역 기독교계의 자선 봉사 단체 및 시민 법률 상담 활동을 하면서 지역 기반을 다졌고, 1990년대에 지역 인권 변호사로 그 명성을 드높였다. 1993년부터 2004년까지 카고 대학교 법과 대학의 인기 전임강사로서 헌법과목을 지도하여 학술적으로도 그의 이름을 널리 알렸다. 1996년에 일리노이 주 상원의원(민주, 시카고 남부 제13지역구 대표)이 되면서 정계에 입문하였으며, 활발한 입법활동으로 유명세를 드높였다. 2004년 11월의 미국연방상원의원선거(일리노이 주 대표)에서 민주당 소속으로 출마해 70%의 압도적인 득표로 당선하였다.
미국 중앙정치무대에서 이라크전에 강력하게 반대하면서, 유일한 개혁적 아프리카계 정치인이라는 사실과 더불어, 2004년 8월 보스턴에서 열린 민주당 전국전당대회 기조연설과 2004년, 2006년 선거전 등에서 보여준 천재적인 대중연설 능력과 열성 지지자들의 성원에 힘입어, 2007년 2월 제44대 미국 대통령 선거의 민주당 후보경선에 출마를 선언하였다. 2008년 6월 3일,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지명에 필요한 대의원수를 확보하여, 당의 공식 후보로 사실상 확정되었으며 2008년 8월 28일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후보 지명 수락 연설을 함으로써 공식적으로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되었다. 2008년 11월 4일 제 44대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 대선 주자인 존 맥케인 상원의원에 두배가 넘는 선거인단을 확보하며 압도적인 승리를 거둠으로써 232년 미합중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당당히 당선 하게되었다.
2008년 11월 미국이라는 거대한 나라는 최초 흑인 대통령이라는 변화와 함께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일각에서는 대북 문제나 FTA측면에서 현 대한민국 정권과 맞지 않을 것이라는 부정적인 견해도 두루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그의 지도력과 현재 전세계가 격고있는 경제 위기를 버락 오바마라는 사람이 어떻게 이끌어 나갈지는 아무도 모른다.
앞으로 그의 행보가 주목된다.